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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의 마을] 부암동 신선마을

에움길 발행일 : 2024-0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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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암동 신선마을

 

부암동 신선마을은 백양산 산자락에 위치하고 있으며, 서면과 매우 가까운 곳에 위치하고 있지만 경사가 급한 고지대 마을로 유명하다. 대부분의 주거들이 무허가 주택이며, 급속한 고령화로 인해 낙후된 지역 중의 하나이다.

 

  • 방문일 2024년 4월 13일 토요일

 

정말 아무런 계획도 없이 그냥 차를 타고 마음이 가는 대로 차에서 내려 발길이 닿는 대로 걸었다. 처음 가려도 했던 곳은 부암교회와 부암교회 아파트 주변이었다. 이 글 앞에서 부암교회 아파트 주변의 부암동을 포스팅했다. 신선마을까지 담기에는 사진도 글도 너무 많이 신선 마을은 이곳으로 넘겼다.

 

 

[부산의 마을] 부암1동 부암교회 주변 풍경

부암1동 부암1동은 마을이 여러 갈래로 나뉘어 있다. 진양교차로를 중심으로 북서쪽은 당감동과 맞닿아 있고, 진양교차로 북동쪽은 삼각형 행태로 초읍으로 가는 길을 사이에 두고 있다. 남동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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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암교회를 지나 찾아간 곳은 역시 부암1동 신선마을이란 곳이다. 지도를 보고 대충 어딘지는 알았지만 그곳으로 가 본적은 이번이 첨이다. 내 평생에 그 지역을 가보기는 처음이다. 하기야 어디 그곳만 처음 갔을까? 아무리 부산에 오래 살아도 큰 길로만 다녔지만 나와 상관도 없는 지역을 굳이 찾아 골목골목 누빌 필요는 없었던 것이다.

 

부암동 신선마을은 정책적으로 붙인 이름이지 동네 사람들은 '신선마을'이란 표현을 썩 달가워하지 않았다. 이건 그곳을 탐방하면서 마을 사람들을 만나 물을 것이다. 동네 이름이 있냐고 물으니 그런 것 없고 그냥 옛날부터 '부암동'으로 불렸다고 한다. 

 

[이미지 출처 카카오맵 https://map.kakao.com/]

부암 새고개

 

새고개라는 표현이 참 그렇다. 이 길은 나도 처음 보는 길이라 주민들에게 물었더니 원래는 없던 길이라고 한다. 그렇다고 없었던 것은 아니다. 작고 좁은 도로였는데 수년 전에 서면동일파트스위크 아파트 단지가 들어오면서 길을 대대적으로 다시 만들면서 지금의 4차선으로 넓혀진 것이라고 한다.  

 

하지만 카카오맵으로 이전 로드뷰를 돌려보니 2008년에도 지금의 모습과 거의 흡사한 4차전 도로이다. 아마도 그분들은 시차를 정확히 계산하지 못하고 40년전을 불과 몇 년처럼 이야기하곤 한다. 이러한 현상은 나이가 많은 분일수록 심하다. 환갑이 넘으신 분들은 지나온 시간을 매우 짧게 요약하는 습관이 있다. 자신도 정확하게 그 시간을 파악하지 못하기 때문에 일어나는 오류이다. 이것이 구술의 한계이다. 취록자는 이러한 구술자의 인지 오류가 있음을 알고 다른 질문과 사건들을 통해 객관성을 확보하는 것이 중요하다.

 

인터넷을 마루리 검색해도 동평론에 대한 역사는 나오지 않는다. 필자의 개인적인 추측은 1990년대 초반에 하야리야 부대앞 부암고가교가 만들어지면서 동평로가 확장된 것은 아닐까 싶다. 현재 부암고가교도 철거 요구가 빗발치고 있다고 하는데 어떻게 될는지 모르겠다.

 

 

부암새고개 육교를 건너면 2025년 8월 입주 완공 예정인 부암2차 비스타동원아프포레아파트가 건설 중이다. 이 아파트고 들어서면 앞과 뒤가 꽉 막힌 답답한 상황이 연출될 것 같다. 서면과 가깝고 동서 고가도로 등 교통의 편의성이 높은 지역이라 그런지 아파트가 우후죽처럼 세워지고 있다.

 

 

 

 

 

당감동 쪽으로 내려가지 않고 백암사가 있는 동평로 131번 길로 올라갔다. 특별한 계획이 있었던 것이 아니다. 그냥 이곳은 처음이라 올라가 보고 싶었던 것이다. 나중에야 이곳이 생각보다 특별한 곳임을 알았다.

 

 

부암미주 아파트

 

동평로 131번길 초입니다. 바로 앞에 미주 아파트가 있는데, 이 지역에서는 이 아파트가 굉장해 유명한 모양이다. 당감동 사람들도 미주 아파트를 모두 알고 있었다. 미주 아파트가 지어지기 전 이곳은 큰 바위들이 즐비한 곳이었다고 한다. 아직도 동네 사람들은 이 자리의 바위들을 기억하고 있었다. 2024년 4월 현재 미주아파트는 평당 700만 원대 초반에 거래되고 있다. 작은 평수는 55m 2이고 가장 큰 평수가 70m 2이니 대부분이 20평이 되지 않는 작은 아파트다. 재개발이 될는지 모르겠지만 아마도 이 지역은 힘들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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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미주 아파트 입구 좁은 길로 들어갔다. 나중에 내려오면서 직접하면 남산아파트가 있는 곳으로 이동하게 된다. 

 

 

 

골목으로 들어오자 분위기가 너무 바뀐다. 미주아파트 입구 가까운 골목은 그래도 조금은 살아 있는 느낌이었지만 조금만 들 들어오면 분위가 완전히 달라진다. 사람이 거의 보이지 않고 너무나 조용한다.

 

 

좁은 계단이 이곳저곳 끝없이 이어지고, 사람이 빠져나간 흔적이 역력하다.

 

 

큰 도로와 매우 가까운 곳임에도 의외로 빈집이 많다. 모두 문을 열어보지 않아서 확증할 수 없지만 대충 느껴지는 것이 있다. 사람이 살지 않으면 대문에 녹이 슬고, 우편물이 쌓여 있고, 풀이 자란다. 그냥 딱 봐도 사람이 살지 않은 것이 느껴진다. 가끔 그런 집에서도 사람 인기척이 나기는 하지만 대부분은 빈 집이다. 얼마 들어오지도 않았는데 벌써 빈집들이 이렇게 즐비할 줄이야.

 

 

다듬어지지 않은 길이다. 커다란 바위가 있는데 그 위에 집을 그대로 얹졌다. 이 지역에 예전에 바위가 많았던 지역이 맞는가 보다.

 

 

길이 의외로 넓어 들어갔는데 막다른 골목이었다. 길의 모형이 ㅈㅇ말 특이하다. 예전에는 어떤 모양이었기에 이런 모양의 골목길이 만들어진 걸까?

 

 

막다른 골목인지 모르고 계속 들어갔더니 이런 골목이 나온다. 하도 특이해서 사진을 몇 장 찍었다. 대문이 있고, 그 안에 또 집이 있었다. 집 안에 집이라니... 그리고 대문 왼쪽에는 샘이었다. 샘 위에 벽을 쌓아 집을 지은 것이다. 상수도가 없었을 때 우물은 정말 귀중한 것이었다. 아마도 그때는 동네 사람들이 같이 쓰다 상수도가 들어오면서 우물은 쓸모가 없어져서 막아 버린 것 같다. 이러한 동네 우물은 구도심에 가면 의외로 많다.

 

 

우암동 소막마을 새시장 마을에 있었던 공동우물

 

 

우암동 소막마을 그리고 피난민들의 애달픈 삶

우암동은 부산광역시 남구에 속하는 법정동이다. 일제강점기 시절 한우를 일본으로 반출하기 위해 소를 검역하던 소막이 있다 하여 '우암'이란 단어가 생겨났다. 암은 바위 암(岩) 마을 앞에 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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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나와 감로원 옆으로 올라가는 골목으로 다시 올라갔다. 감로원이란 곳에 많은 화분이 있고, 목단이 예쁘게 피어 있었다. 목단이 지면 목단의 사촌인 작약이 필 것이다. 꽃이 지면 또 다른 꽃이 핀다.

 

 

 

감로원을 지나 윗길로 올라가면 역시나 수많은 빈집들. 요즘은 사람이 사는 집을 찾기가 더 힘든 것 같다. 앞으로 뒤로, 옆으로 모두 빈 집이다. 오른쪽으로 보이는 집은 사람이 사는 것 같았다.

 

 

이 집은 화단이 잘 가꾸어진 것을 보니 사람이 아직 살고 있는 것 같다. 작약으로 보인다. 날씨가 따뜻한지 다른 곳에서는 아직 피지도 않은 작약이 꽃을 피웠다. 목단인가? 

 

 

 

당감동 쪽을 바라보니 수많은 아파트가 즐비하다.

 

 

좁은 골목을 따라 계속 올라갔다.

 

 

드디어 큰 골목으로 나왔다. 나중에 내려갈 때는 큰 길로 내려갔는데 정말 가까웠다. 골목을 돌고 돌아 여기까지 온 것이다.  이 골목도 사람이 많이 살았을 때는 골목 상권이 꽤나 괜찮았을 것이다. 

 

 

간판들이 80년대 말이나 90년대 초반 스타일이다. 수십년을 아직도 버티고 있다는 것이 정말 신기하다.

 

 

매일 수퍼와 남산 쌀 상회 슈퍼가 있는 것을 보니 이곳에도 옛날에는 사람이 정말 많았던 것으로 보인다. 가까운 곳에 작은 슈퍼가 둘이나 있다니...

 

 

남산슈퍼 앞에서 바라본 아랫마을, 부암동 아래말을과 당감동 지역이 한눈에 들어온다. 저 멀리 보이는 언덕 위의 아파트는 개금동의 동원화인패밀이타운아파트와 개금우드빌 아파트이다. 그냥 보기에 아슬아슬하다. 난 무서워서 못 살 것 같다.

 

 

 

따사로운 햇빛, 동네가 한 눈에 내려다 보이는 뷰가 최고다. 그렇게 시끄럽던 곳도 이곳에 오니 조용하다. 새소리가 들리고 따스한 바람이 살랑살랑 불어온다. 사실, 난 여기가 동네 끝이라고 생각했다. 잠시 앉아 있다 내려갈 생각이었다. 

 

 

막다른 골목인줄 알았는데 아파트 사이로 작은 골목이 길이 있어 또 올라갔다. 남산 아파트 앞으로 있는 집들도 대부분 모두 빈 집이다. 사람이 살지 않는다. 아무도 없다.

 

 

세상에 어떻게 이런 곳에서 사람들이 살았을까? 아직도 이런 집이 남아 있다는 것이 그냥 신기하다. 빈 집이 된 지 오래되어 보인다.

 

 

지붕에서 자고 있던 고양이가 카메라 소리에 놀라 숨는다. 고양이가 있는 줄도 몰랐다. 위의 사진을 보니 고양이가 지붕에서 자고 있다.

 

 

 

골목을 따라 올라기니 바위동산이 숨트는 신선마을이란 표지가 나온다.  아마도 이곳도 수많은 폐가들이 있던 곳을 정리해 작은 공원으로 만든 것은 아닐까 싶다. 혹시나 싶어 자료를 찾아보니 NABIS라는 사이트에서 [신선이 노니는 마을 정상에서 맑은 공기를 마시자! 신선마을!]이란 글이 올라와 있다.

 

 

 

더 올라가니 공영주차장이 있고, 신선마을 공유센터가 있다. 정체가 무엇인지 알 길이 없다. 자료를 찾아보니 동네 사람들을 쉬어가는 곳이라는데 70넘은 노인들이 저곳에 왜 갈까? 실제로 들어가 봐도 동네 사람들은 없다.

 

 

공영 주차장 앞에 피어었던 하얀 겹벚꽃. 이곳에서 하얀 겹벚꽃은 처음 봤다.

 

 

분홍 겹벚꽃와 하얀 겹벚꽃의 색 차이가 확연하다. 새하얀 색은 아니지만 기존의 붉은색과는 완전히 다르다. 이런 품종이 있었다니 거참...

 

 

 

남산 아파트 단지가 생각 외로 크다.  그런데 남산이란 이름은 왜 지었을까? 주민들에게 물어도 무르겠단다. 왜 남산인지? 서울의 남산을 가져온 것인지? 아니면 남쪽의 산 언덕이라 지은 것인지 알 길이 없다.

 

 

이렇게 높은 곳에 마을이 있다니. 신기해서 계속 올라갔다. 

 

 

좁은 골목길을 따라 올라기니 반대편이 보인다. 

 

 

집에서 지도를 꼼꼼히 살펴보고 이곳이 부암동 산언덕 꼭대기 마을인 것을 알았다. 예전에는 이곳에 훨씬 더 많은 집들이 있었다고 한다. 시에서 무허가 건물을 부수고, 사람들을 다른 곳으로 이주시켰다고 한다. 아직도 허물어진 집터가 보인다.

 

 

 

 

 

 

 

 

 

이곳의 집들은 대부분이 무허가이다. 마을사람들에게 물어보니 동네 사람들은 이곳을 '판자촌'이라 불렀다. 판자는 나무판자를 말하는데, 집을 지을 때 나무를 켜고 남은 것을 가져와 잇대어지었기 때문에 생긴 이름이다. 아마도 처음 이 마을이 생겼을 때 가난한 사람들이 나무를 가져와 집을 지은 것이 '판자촌'이란 별명을 얻게 된 것 같다. 신선마을도 본 이름인 아니고 시에서 붙인 이름이라고 한다. 더 이상 깊은 내력은 알 길이 없다. 

 

 

 

 

 

 

길을 가다 봤던 연탄 보일러. 이곳은 대부분이 기름보일어든지 아니면, 연탄보일러를 아직도 사용하고 있다. 도시가스가 들어오지 않는다. 아직도 이런 곳이 있을까 싶지만 의외로 부산의 많은 구도심의 집들이 기름보일러이고 연탄보일러도 가끔 있다.

 

 

 

 

 

 

연화사

 

지도에도 나와 있지 않은 작은 사찰이다.  오른쪽을 작은 길은 백양산으로 올라가는 등산로입구이다.

 

 

 

 

사람은 떠나도 식물은 잘만 자란다. 식물이 약하다고 생각하지만 실상은 사람보다 훨씬 강하고 자생력도 뛰어나다.

 

 

수많은 곳들이 다 빈 집이다. 이 좁은 곳에 어찌 집을 짓고 살아왔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참 신기하다.

 

 

 

연화사 윗길에서 바라본 신선마을. 수많은 고층 아파트가 전망을 모두 막고 싶어 숨이 턱턱 막힌다. 이렇게 높은 산도 고층 아파트의 위력? 앞에서 꼼짝을 못 하다니.

 

 

다시 좁은 골목길로 내려갔다. 사람 한 명 겨우 지나갈 좁은 골목길이다. 제대로 된 지붕도 없어 판자를 놓고 블록을 올려놓았다. 벽은 쓰다 버린 장판으로 대신했다. 이렇게 사는 곳도 있구나.

 

 

 

다시 신선마을 공유센터 앞이다. 아까는 보지 못했던 지적 재조사사업 현수막이 걸렸다. 땅주인과 이해관계인이라 쓴 것을 보니 이 지역 자체가 대부분 무허가인 것이 분명해 보인다. 참 안타깝다. 앞으로 어찌 될는지.

 

 

이제는 좁은 골목이 아닌 큰길로 내려가니 아까 보지 못했던 신선마을 표지판이 보인다.

 

 

 

다시 미주 아파트 앞이다. 

 

 

큰 도로변으로 내려오니 벌써 해가 저물어 건다. 간판에 하나둘씩 불이 들어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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