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주례동5 주례동 주례시장, 롯데캐슬 골드스마트아파트 옛 자리 주례1동 주례시장 골목길 주례1동에 있던 주례시장은 주례동 주민들의 유일한 시장이었다. 철길아래 자리하고 있었던 작은 시장 골목은 수많은 사람들로 붐비던 곳이었다. 주례삼거리 건너 주례럭키아파트 주변이 신시가지였다면 주례1동 새마을금고가 자리하던 주례시장은 구시가지인 셈이었다. 현재는 롯데캐슬 아파트가 들어와 옛 흔적은 찾을 수가 없다. 필자가 2014년에 온골마을에서 나와 주례시장 골목을 지나면서 찍은 사진들을 이곳에 올린다. 방문일 2014년 8월 26일 사진은 철길 위 육교에서 내려오면서 찍은 사진들로 아래로 갈수록 주례사거리 방향으로 내려간다. 주례시장 안에는 우물이 있었고, 우물 곁에 거대한 회화 나무가 있었다. 수령은 약 600년 정도 되었다고 한다. 주례동의 회화나무는 신령해서 당골레들이 와.. 부산의 마을풍경 2023. 4. 26. 더보기 ›› 주례동 온골행복마을 주례동의 기원 주례동(周禮洞)은 부산광역시 사상구에 있는 법정동이다. 주례동(周禮洞)의 주례(周禮)는 마을 형성 초기 마을 사람들의 공동 조직체인 두레가 발달하여 두레를 한자로 표기한 것이라 한다. 다른 기원설로는 두레가 발달하여 지명을 정할 때 주나라의 주공이 지은 책 [주례(周禮)]를 가져와 사용했다는 설도 있다. 주례동 온골마을 주례동은 늪지대였다. 사상구의 사상은 모래 위란 뜻으로 낙동강 하구라 모래가 많아 생겨난 표현이다. 온골마을은 본 주례에 해당할 수 있다. 지형적으로 보면 주례사거리 밑으로는 매립이 되기 전까지는 낙동강 하류에 속한 모래밭 또는 뻘밭이었다. 아직도 주례동의 저지대는 종종 물에 잠긴다. 철길 주변으로 형성된 마을은 주례동의 자연마을들이다. 대부분의 주례사람들은 사상 공단에서 .. 부산의 마을풍경 2023. 4. 26. 더보기 ›› 사상구 주례2동 철길마을 디딤돌마을 주례2동 디딤돌 마을, 철길마을 디딤돌 마을은 주례2동 철길마을 말한다. 주례동은 경부선이 지나고 있어서 철길을 주변으로 가난한 사람들이 판잣집을 짓고 살면서 자리를 잡았다. 이후에 국가땅이라는 이유로 국유지에서 나가라는 통보를 했지만 여론에 부딪혀 철회되기도 했다. 그 이후 어떻게 되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디딤돌 마을이란 이름 전에는 희망을 준다는 뜻으로 희망 마을이라 불렀다. 이러다 소망마을이라 부르게 될지도 모르겠다. 방문일 2014년 8월 22일 디딤돌 마을은 철길을 바로 곁에 두고 만들어진 마을이다. 현재 도시철도 2호선 냉정역이 들어서 있다. 길 건너편에 유명한 샘인 냉정샘이 자리하고 있다. 냉정역 4번 또는 6번 출구에서 나오면 이바국 국밥집과 장소24국밥집 사이로 올라가면 오른쪽으로 .. 부산의 마을풍경 2023. 4. 25. 더보기 ›› [부산의 하천] 학장천 학장천의 역사 학장천은 부산진구 개금동에서 발원하여 주례동과 학장동, 엄궁동을 거쳐 낙동강으로 흘러가는 부산의 하천이다. 부산의 대부분의 하천이 그렇지만 학장천은 심각한 오염으로 인해 악취가 진동하여 학장천 주변에 사는 사람들에게 큰 고통을 주었다. 부산시는 2011년 6월 23일 학장천의 생태하천 복원 착공식을 주례초등학교에서 열고 학장천 복원을 시작했다. 12년이 흐른 2023년 4월 현재 많은 진척이 있기는 했지만 여전히 악취가 가시지 않고 있다. 학장천은 부분 부분 복개가 이루어져 복개천으로 불리기도 한다. 개금동의 일부는 열리거나 복개되었고, 주례동도 일부는 열려 있고, 상당 부분이 복개되었다. 주례를 지나 학장동으로 넘어오면 비로소 공기를 만나지만 여전히 악취가 진동한다. 물론 복원이전보다는 .. 부산의 자연과 공원 2023. 4. 25. 더보기 ›› 부산 도시철도 2호선 주례역 주례역 주변 풍경 1호선이 생기고 두 번째 2호선이 생겼을 때 주례 사람들은 정말 좋아했다. 서면에서 주례로 넘어오려면 개금을 지나 지금 개금역이 있는 개금사거리를 지나야 사상으로 들어오게 된다. 엄밀하게 양방향에 있는 SK주유소를 기점은 부산진구와 주례동으로 나뉜다. 하지만 당시 사람들은 개금사거리를 넘으면 고개를 넘는다는 표현을 썼다. 그곳에 고갯길이었기 때문이다. 80년대 이전만 해도 사상은 사람 사는 곳이 아니라 그냥 공단 그 자체였다. 부산 전체가 공단이었으니 뭐 특별한 것도 없었지만 사상은 더 심했다. 사상과 사하는 모든 곳이 공단이었다. 묘한 차별이 개금사거리를 중심으로 갈리고 있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것을 이해하지 못하지만 1960년대 젊은 시절을 보냈던 이들이라면 미묘한 이 감정을 알.. 부산의 길과도로 2023. 4. 22. 더보기 ›› 반응형 이전 1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