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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양사거리 황금신발 테마거리

에움길 발행일 : 2024-0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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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신발 테마거리

 

개요

 

황금신발 테마거리는 진양사거리 남동쪽에 자리하고 있는 부산진구청이 조성한 테마거리 중의 하나이다. 부산진구 진양사거리에서 시작하여 부산시민공원 남문까지 이어지는 길이다. 현재는 진양사거리의 480m 정도의 1구간만 완성되어 있다. 

 

부산 발전의 초석이 되는 신발산업을 테마거리로 만들어와 관광상품과 함께 연계할 계획이라고 한다. 진양사거리는 부산의 고무신발 업체였던 진양고무가 있던 거리이다. 

 

작은 촌에 불과했던 서면이 급성장하게 되었던 배경 안에는 가야동을 비롯하여 부암동 등에 있었던 신발공장과 깊은 연관이 있다. 부산진에는 진양을 비롯하여, 태화, 삼화, 동양, 대양 등의 대형신발공장이 성업했다. 삼화의 경우는 서면 번화가에 백화점을 만들었으니 결국 폐업하고 말았다.

 

황금신발 테마거리는 부산시가 주도하는 [부산 근대 역사의 길]과 맥을 같이한다. 

 

  • 방문일 2024년 3월 17일

 

 

 

 

황금신발 테마거리 가는 법

 

[부산도시철도 이용 시]

  • 황금신발테마거리는 부산도시철도 부암동역 4번 출구로 나와 진양사거리 방향으로 350m 정도 올라가면 나온다.

 

[버스 이용 시 정류소]

버스로 올 때는 오는 차에 따라 부암역, 부암초등학교, 진양사거리에서 하차하면 갈 수 있다.

  • 부암초등학교 하차 / 일반 44번
  • 진양교차로 하차 / 129-1번, 138-1번, 141번, 160번, 169-1번, 17번, 23번
  • 부암동. 당감입구 하차 / 129-1번, 138-1번, 141번, 160번, 169-1번, 17번, 23번, 63번, 81번, 141번(심야)

 

[이미지 출처 카카오지도 진양사거리 https://map.kakao.com/]

 

진양사거리는 진양삼거리로 불렸다. 부산진구청 앞으로 가는 도로가 매우 좁아 도로 취급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부산시민공원이 만들어지고, 그리로 들어가는 길과 연동되면서 좁았던 도로는 6차선으로 확장되었다.

 

부산진구청 뒷길로 빠지는 길도 1차선의 좁은 도로이고, 차가 거의 다니지 않았다. 하지만 쌍용드윗닷홈파크아파트와 서면동문굿모닝힐아파트 등의 아파트 등이 들어서면서 글이 2차선으로 확장되었다. 삼거리나 다름없던 곳이 사거리가 된 셈이다. 아직도 기존의 삼개의 도로와는 차이가 확연하다.

 

 

 

부산도시철도 2호선을 따고 부암동에서 내려 진양사거리 방향으로 올라갔다. 이곳을 몇 번 지나면서 이런저런 추억이 쌓인다. 아직 포스팅을 안 했지만 이곳에 오기 전, 서면 굴다리와 철길마을도 다녀왔다. 아마 조만간 그곳도 포스팅을 할 것 같다. 시간이 참 빠르다. 돌아서면 며칠, 몇 달이 흐른다. 

 

진양사거리는 하늘과 땅이 교차하는 구간이다. 위로는 동서고가도로가 다리고, 중간에는 철도가 지나고, 땅에는 부암동, 당감동, 초읍동, 연지동, 양정으로 빠지는 차들이 몰리는 곳이다.  아래 사진을 보면 왼쪽 위로 지나는 도로가 동서고가도로이고, 중간 연초록이 기찻길이다.

 

 

테마거리에 가기 전부터 벽에 부산의 역사를 담은 벽화가 그려져 있다.

 

 

부산의 역사는 신발의 역사와 같이 한다. 많은 공장과 산업이 있지만 '신발'을 빼고는 부산의 역사를 말할 수 없을 정도이다. 왕자표니 기차표 등의 수많은 고무신, 운동화 등은 대부분 부산에서 만들었다. 심지어 나이키의 90%가 부산에서 만들어진 적도 있다면 모두가 놀랄 것이다. 그만큼 부산의 신발 기술은 세계적으로 뛰어났다.

 

하지만 그림자도 크다. 제대로 된 보상도, 쉼도 없었다. 기계처럼 저 노동에 착취당하며 살아야 했다. 특히 1960년 3월 2일 일어났던 국제고무화재사건은 큰 충격이었다. 장난으로 성냥을 켠 것이 화재로 이어졌다. 아무런 보상도 없이 끝난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사건이었다. 국제고무 화재사건으로 62명이 사망하고 39명이 부상을 입었다. [출처 Moneys "3월 2일, 장난이 불러온 대참사 감독관은 출입구를 막았다"]

 

 

철길 아래에는 그동안 만들어진 신발의 브랜드가 모자이크로 그려져 있다. 프로월드컵, 프로스펙스 등 다양한 신발 메이커가 그려져 있다.

 

사람이 은근히 많이 지나다닌다. 아마도 도시철도를 이용해 집으로 향하는 이들이 이 길 밖에 없기 때문에 그렇지 않은가 싶다.

 

 

 

지난 길에 보았던 건너편의 목련. 벌써 한 달이 지났다니 참 시간 빠르다. 건너편에 있던 작은 목련 나무에 회색톤의 도심 속에 새하얀 빛을 발하고 있어 몽환적인 느낌이 들었다. 말로 표현하기 힘든 묘한 느낌이었다. 사진으로는 담을 수가 없다.

 

 

진양사거리는 언제나 막힌다. 출퇴근 시간만큼은 아니지만 낮에도 신호를 한 번만 받고 가는 경우가 흔치 않다. 특히 초읍이나 당감 쪽에서 진양사거리로 향하는 곳은 항상 차들이 많다. 앞에 보이는 횡단보도를 건너면 황금신발 테마거리가 시작된다. 

 

 

 

 

 

 

 

 

 

뒤쪽으로는 외식 1번가가 들어서 있다. 80년대 후반까지도 진양삼거리를 지나면 냄새가 심해서 창문을 열지 못할 지경이었다. 산업의 발전을 이루었지만 그에 대한 대가를 치르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시간이 지나니 이곳도 다 정리가 되고 그때가 좋았다는 말도 안 되는 환상을 갖게 된다. 다시 그 시절로 돌아가면 누가 과연 버틸 수 있을까? 흘러가 추억은 마약과 같아서 모든 것이 좋게 보인다.

 

그래서일까? 노동자들이 많은 곳에서 한상 진보가 승리하고, 개혁적인 성향이 강한데 유독 부산은 어느 순간 민주화의 도시에 가짜 보수당에 표를 주는 지역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생각하면 그냥 짜증이 난다. 서민을 괴롭히고 착취하는 당을 왜 찍어 주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다. 여기서 정치 이야기는 하지고 싶지 않지만 그냥 부산의 정치성향을 보면 짜증이 난다. 이 모든 것인 '우리가 남이가'에서 시작한 것이 아니겠는가? 참으로 무섭고 개탄스러울 뿐이다.

 

 

 

 

부산의 발전에는 여공들의 피눈물이 있었다. 자지 못하고, 입지 못하고, 먹지 못하며 모은 돈으로 가정을 살렸다. 휴식시간도 없이 작은 의자에 앉아 하루에 열 시간이 넘는 노동을 해야 했다. 친누나도 가야동의 신발공장에서 일했기 때문에 그런 이야기는 자세히는 몰라도 대충은 알고 있다. 얼마나 열악한 환경이었는지를. 그럼에도 노동자를 착취하는 당을 찍다니... 오늘 갑자기 짜증이 확 밀려오네.

 

 

건너편은 동서고가도로로 올라가는 길과 당감으로 들어가는 길이다. 오른쪽 위 언덕도 부암동이다. 이곳에는 며칠 전 다녀와 포스팅을 했다. 부암교회와 부암교회 아파트 주변 풍경이다. 황금신발테마거리에 올 때까지만 해도 몇 주 후에 건너편에 간다는 생각은 해 본 적이 없다. 사람의 일이란 알 수 없는 것이다. 하나씩 하나씩 부산의 지도가 완성되어 가는 것 같다.

 

 

 

신발 조형물. 

 

 

 

작은 화단을 만들어 꽃을 심었다. 내가 갔을 때는 팬지와 튤립이 잘 자라고 있었다.

 

 

때마침 화물기차가 지나간다.

 

 

서면근대문화유산 추억길이란 알림판이 있어 사진을 찍어왔다. 이런 길이 있는 줄도 몰랐는데 기회가 되면 지도를 참고해 돌아보고 싶다.

 

 

 

부산의 과거 역사를 간직한 부산의 고갯길 목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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