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도시 철도 1호선
부산도시철도 1호선의 역사
부산 지하철(이후에 도시철도로 개칭)은 계속하여 요구되었다. 서울을 능가하는 교통체증은 부산시민들을 고통스럽게 만들었습니다. 대부분의 공단 지역인 부산 시내는 출퇴근 시간 외에도 교통 체증이 종종 유발되어 시민들은 지하철이 필요하다는 요구가 빗발쳤다. 하지만 당시 기술로서는 지하철은 쉽게 만들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하지만 더 이상 미뤄서는 안 된다는 분위기가 만들어지고 결국 1985년 7월 19일 역사적인 개통식을 갖게 된다.
1 호선 초기 지하철은 부산의 중앙선으로 불리는 도로를 따라간다. 영도대교 앞에 부산 시청이 자리하고 있었고, 부산의 고속도로가 시작되는 구서 IC까지이다. 당시 부산에서 가장 넓은 도로이자 가장 많은 차량이 몰리는 구간이다. 가장 먼저 이곳을 고려하여 지하철을 계획했기 때문에 현재 많은 노선이 엇갈리는 일이 일어나고 있다.
내부 사정은 모르지만 아마도 1호선은 신평과 구포역을 처음부터 계획한 것으로 보인다. 즉 1-3단계까지는 처음부터 계획하고 차근차근 만들어 나갔던 것이다. 그리고 더 이상 1호선은 연장되지 않았다. 2호선이 생기고, 3호선까지 생겼음에도 1호선은 그 자리였다. 하지만 선거철만 되면 장림과 다대포 주민들의 표를 얻기 위해 장림 다대표 출마 후보들은 늘 다대포까지 지하철 연장을 내 걸었다. 하지만 당선되면 입을 닦았다. 하지만 마침내 장림과 다대포 사람들의 원성에 의해 5단계가 시작된다.
처음부터 지하철이 들어설 계획은 없었다. 초기에는 경비를 줄이고 간편하게 일을 하기 위해 경전철을 계획했다고 한다. 하지만 주민들은 노선자체가 완전히 다른 경전철이 들어서는 것에 반대했다. 그럼 신평에서 내려 다시 환승해야 하는 불편을 겪어야 했다. 결국 경전철 계획은 철회되고 지하철로 복귀하기에 이른다. 이 부분은 당시 열린우리당이었던 조경태 의원이 강력하게 밀어붙여 지하철로 확정되었다고 한다. 경상도 지역에 기반이 약했던 열린우리당은 민심을 반영하기 위해 노력한 것이다.
하지만 신평부터 다대포까지는 대부분이 펄밭이었고, 매립된 매립지였다. 공사는 난항을 겪었다. 지반침하가 심하게 일어났고, 공사는 생각 외로 많은 시간을 잡아 먹었다. 무려 35곳에서 크고 작은 지반침반현상이 일어나 보강작업을 추가로 해야 했다고 한다. 이뿐 아니라 거의 완공되었을 때도 침반현상으로 인해 건물균열이 일어나기도 했다. 하지만 결국 6개역 7.98km가 연장되어 1017년 완공되기에 이른다. 4월 20일 다대구간 개통식이 열리고 그날 오후 4시부터 첫 운행에 들어가게 된다.
1호선 확장 과정
1단계 구간
1차 개통
1985년 7월 19일
범내골-범어사 15km
2차 확장 개통
1986년 12월 19일
범내골-노포동
범어사에서 노포동까지 확장하여 1.2km 늘어나 16.2km가 된다.
2단계 구간
3차 확장 개통
1987년 5월 15일
범내골 - 중앙동 5.4km 확장
3단계 구간
4차 확장
1988년 5월 19일 중앙동-토성동 2.6km 확장
5차 확장
1990년 2월 28일
토성동-서대신동역 1.9km 확장
4단계 구간
6차 확장
1990년 7월 24일 (착공) - 1994년 6월 23일 개통
서대신동-신평역 6.4km 확장
5단계 구간
2009년 11월 20일 (착공) - 2017년 4월 20일 개통
신평역 - 다대포 해수욕장 7.6km
부산 도시철도 1호선 노선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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