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천 삼거리, 좌천고가교 아래 고관로 벽화
좌천삼거리
생각하기 나름이지만 부산의 도로는 정말 특이하다. 그중의 하나가 좌천삼거리다. 부산에 큰 대로가 있다. 소위 중앙대로가 부르는 것이다. 이 길은 장림과도 연결이 되어 있지만 대체로 충무동에서 시작하는 느낌이다. 송도로 넘어가는 순간 길은 좁아지고 외진 느낌이 든다. 충무동과 남포동, 그리고 중앙동과 부산역, 초량, 부산진역 앞까지 이어진다. 그러다 갑자기 수정터널에서 나와 부두로 이어지는 좌천고가교에서 묘하게 연출된다. 중앙대로는 범일동으로 향하지만 길이 갑자기 두 갈래 갈린다. 하나는 직진하여 범곡교차로를 향한다. 다른 하나는 1시 방향으로 우회전하여 자성대 앞으로 빠진다.
전혀 이상해 보이지 않는다고? 문제는 범곡교차로에서 중앙대로가 갈라져 하나는 다시 범내골 교차로로 빠진다. 이 길은 좌천교차로에서 부자성대 쪽으로 빠지는 길이 서면으로 좌회전하여 만나는 길이다. 지금이야 범천동 앞길이 뚫려서 편도 차선까지 늘어났지만 그전에는 매우 협소한 편도 2차선이었다. 그리고 길도 외지고 중상에서 벗어난 느낌이 강했다. 이러한 묘한 느낌의 도로가 만들어진 이유는 바로 부산의 중심을 가르는 기찻길 때문이다.
부산나라요양병원 앞에서 바라본 좌천삼거리. 중앙에 보이는 곳이 자성대 방향으로 빠지는 길이다. 철길을 너머 좌회전하면 부산진시장과 서면으로 빠진다. 직진하면 문현동과 번영로로 향하다. 우회전하면 부둣길로 빠진다. 수정터널이 완공되어 시내를 통과하지 않고도 서부산에서 모라를 지나 백양터널-수정터널을 통과해 부산진역과 부둣길로 빠질 수 있게 되었다.
수정터널에서 나와 부산진역 방향으로 내려오는 1차선 도로이다. 길도 협소하고 굴국이 심해 매우 위험하다. 조심하지 않으면 접촉사고가 일어나기 매우 쉬운 곳이다.
수정터널에서 나와 부두사거리로 나가는 중간에 있는 고가도로는 좌천고가교이다.
좌천고가교와 굴다리 도보로
좌천고가교 아래에 이런 인도가 있다. 주변 사람들만 아는 특이한 골목이다. 대부분의 부산사람들은 이 길을 알지 못하다. 그리고 갈 일도 없다. 굳이 이길을 가야 하는 사람들은 이곳의 주민과 주변에서 일하는 사람들이다. 나도 늘 큰길로 다니고 차로 다녔기 때문에 직접 도보로 이곳을 지난 것은 이번이 첨이다.
부둣길로 나가는 방향에 도로에 연결된 육교가 있다. 저 육교는 어디로 향하는 걸까? 하도 궁금해서 카카오맵에서 길찾기를 통해 인도로 지정하니 정말 부두가의 매축지 마을로 나온다. 와우... 나중에 한 번 가보고 싶다.
내가 가려는 곳은 수정터널 입구, 좌천고가교 아래에 있는 벽화다. 정확하게 벽화는 아니고 전시물?이라고 해야하나? 하여튼 그곳에 가면 동구의 과거의 현재를 사진과 설명 등으로 살펴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곳을 뭐라고 부르는지 앞에 가도 설표지판이 없다.
수정터널 입구쪽에서 바라본 좌천고가교. 갈라져 나오다 하나노 합해진다. 아래의 신호등은 봉생병원 뒷길로 나와 좌천동 가구거리 방향으로 빠지는 신호다. 저 신호 또한 이 주변에 사는 사람이 아니면 갈 일이 없는 신호다.
이곳에 오려면 봉생병원 뒷길로 와도 되고, 나처럼 좌천고가교 아래로 와서 거꾸로 와도 된다. 수정터널 입구 아래의 벽화가 있는 곳은 고관로다. 고관은 조선시대 부산진역 앞에 있었던 두모포왜관을 말한다. 이곳을 조선 사람들은 고과 또는 구관이라 불렀다. 구관이란 표현은 거의 사용하지 않고 대부분 고관이라 사용하여 이곳을 지나는 옛 도로를 고관로로 부르고 있다. 두모포왜관은 1678년 초량으로 왜관이 옮겨지면서 폐쇄되었다. 하지만 이름은 아직도 전해오고 있다. 정말 질긴 이름이다. 부산의 지명 유래는 일본관 관련된 명칭이 정말 많다.
순서는 서쪽에서 동쪽 방향으로 되어 있다. 구한말시대부터 최근에 이르기까지의 사진을 조각조각 이어붙여 볼 수 있다.
사진은 1890년배투 시작된다. 구한말 시대, 동구의 모습을 보여준다. 자성대와 주변의 마을이다. 모두 초가집이다. 우리나라는 1960년대까지만 해도 대부분의 초가집이다. 그러다 스레트가 나오면서 지붕의 혁명이 일어났다. 하지만 스레트에는 일급발암물질인 유리섬유가 들어가 있어서 생산금지 조치 되었다. 이후 철판으로 바뀌게 된다. 현재 시골의 대부분 개량 지붕은 개량철판을 사용하고 있다.
이 길은 지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으나 가끔 와서 둘러보고 간다. 내가 보는 동안에도 5명 정도가 함께 구경했다. 동구의 역사를 이렇게 사진으로 볼 수 있다는 것이 그냥 신기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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