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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의 과거와 현재16

부산시 영도구 지명 유래 영도의 지명 유래 영도 행정 지명 유래 영도구의 행정상 붙여진 이름에 대한 전래를 소개하는 곳이다. 인터넷 검색을 통해 알아낸 다양한 정보를 취합하여 정리했다. 주 인용처는 영도구청 홈페이지 구연혁이다. 영도구 영도구의 영도는 절영도에서 왔다. 절영도는 하루에 천리를 달리는 말이 너무 빨라 그림자를 볼 수 없을 정도라 하여 끊을 절, 그림자 영을 붙여 절영이라 하였다. 이후 절은 사라지고 영도로만 불린다. 절영도의 기원은 영도가 말을 기르기에 적합하여 양도에 말을 방목하면서 목장원이 생겼고, 이후 말들의 고향과 같은 곳이 되었다. 현재의 동삼동은 지대가 완만하여 말을 기르기에 적합한 곳이었다. 영도 전역에서 말을 키웠지만 말들이 주로 활동한 곳은 동삼동으로 상리와 하리였다. 대교동 대교동은 영도대교 주변.. 부산의 과거와 현재 2023. 10. 1.
동삼동 패총 전시관 동삼동 패총 전시관 동삼도 패총 전시관은 부산광역시 영도구 동삼동에 있는 선식기 시대의 패총 전시관이다. 패총전시관 자리와 그 주변은 남부지방에서 발견된 신석기시대의 유적 중 가장 오래된 동삼동패총이 있던 자리다. 현재는 다시 매립되어 공원처럼? 풀이 무성하다. 아래의 사진에 나와 있다. 방문일 2023년 5월 21일 해양대 방향으로는 거의 가지 않는다. 갈 일이 없다. 그곳은 태종대가 아니면 가지 않는다. 하지만 태종대는 이미 시대뒤떨어진 공원처럼 무시당하고 있다. 현재는 운동하러 가는 일부 시민들과 옛 유명세를 기억하고 오는 외국인들 말고는 거의 찾지 않는다. 부산시에서도 거의 신경을 쓰지 않는 것 같다. 일단 패총전시관은 1층이 전부고, 거의 볼 것이 없다. 천천히 걸어도 10분이면 모두 볼 수 있.. 부산의 과거와 현재 2023. 5. 21.
부산의 고갯길 완전히 정리되지 않은 자료입니다. 부산의 옛고갯길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한 곳이 없어 이곳에 정리하려고 합니다. 신문기사나 구전문헌, 책들을 통해 가능한 지역별로 정리합니다. 정확하게 구술되거나 표현되지 않아 장소가 모호한 곳도 있습니다. 글은 필요에 따라 비주기적으로 계속 수정될 수 있습니다. 남구 대연고개 / 남구나 수영구의 사람들이 부산진시장을 가기 위해 넘었던 고개, 문현동에서는 문현고개, 지개골고개라하고 대연동 사람은 대연고개, 신정(신동)고개라 부른다. 장고개 / 우암동 사람들이 문현교차로 방향으로 넘어가는 고갯길. 부산장을 보러나는 시장고개이다. 솔개고개 / 감만동 백운고개 / 용호동 큰고개 / 용호동 뻘끼이고개 / 용당동에서 용호동으로 넘어가던 고개 장고개 / 우암동 문고개 / 문현동 아리랑고.. 부산의 과거와 현재 2023. 5. 14.
[부산포 개항가도] 안용복기념 부산포개항문화관 안용복, 그는 누구인가? 안용복(安龍福)은 동래부 출신으로 동래 수군으로 들어가 능로군으로 복무했다. 그는 부산에 있던 왜관에 들어가 일본인들과 자주 만나 일본어를 능숙하게 구사할 줄 알았다. 독도 근처에서 불법으로 어업 하던 일본 어부들에게 납치되어 일본에 끌려가 당시 에도 막부를 만나 울릉도는 조선의 땅이라 주장한다. 그는 막부에게 울릉도가 조선의 영토임을 확이하는 서계를 받아 돌아온다. 하지만 송환 도중 대마도주에게 서계를 빼앗긴다. 조선에 들어가자 멍청한 조선관리들은 왜에서 돌아온 안용복 일행에게 곤장을 때렸다. 대마도주는 울릉도를 자신들의 차지로 만들기 위해 조정에 다케시마(죽도)에서 조선 어민의 어채를 금지해 달라는 막부의 서계를 위조해 보낸다. 하지만 조선은 다잇 갑술환국으로 소론이 정권을 .. 부산의 과거와 현재 2023. 5. 11.
[부산포 개항가도] 부산진교회 부산진 일신여학교 부산포 개항지도 부산포개항가도는 좌천동과 저성대 일대를 아우르는 곳이다. 이 길은 둥구의 역사를 담은 역사스토리로 구성되어 있다. 며칠 전 간 곳은 부산포 개항지도가 있는 곳과 삼일절 독립운동에 주도적인 역할을 했던 부산진교회와 부산일신여학교이다. 지금은 폐교가 된 금성중학교 앞 정류소에 내리면 동구가 낳은 인물과 부산포개항지도가 그려져 있다. 부산진은 부산의 어원이 되는 곳이다. 부산(釜山)은 다양한 의견이 있으나 가장 유력한 설은 수정동에서 가야동으로 넘어가는 고개인 가모령에서 유래되었다. 처음 부산은 釜山이 아닌 富山이었다. 조선 성종 때부터 두 한자가 병용되어 사용하다 釜山으로 고착되어 사용되었다. 당시만 해도 부산은 작은 촌동네였다. 부산은 일제강점기 시절에 초량과 용두산 중심으로 일본인들이 살.. 부산의 과거와 현재 2023. 5.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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